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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경제

겜블 (Rogue Trader, 1999)

촌닭인 닉 리슨은 베어링스 은행에 취직을 하여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산다. 어느 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파견을 가서 불량채권을 회수하는 일을 맡고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에게는 욕심이 있었다. 그는 은행의 잡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닌, 시장의 트레이더가 되고 싶었다. 그가 인도네시아에서 보여준 성과로 인해 싱가폴에서 주식 중개 업무를 맡았다. 고객의 주문을 받아 수수료를 챙기는 것과 동시에 오사카와 싱가폴 거래소에 동시 상장되어 있는 니케이 지수 선물 차익거래를 한다.

 

초반에 리슨은 충실히 고객을 위한 트레이더였지만, 중간에 직원의 주문실수로 손실이 발생하자 그 손실을 메우기 위해 겜블을 시도한다. 주가지수의 방향을 예측하여 그 방향으로 베팅을 한 것이다. 월말에 결산을 하는 회사 내규를 이용해 월말 이전에 비밀계좌를 만들어서 수익을 얻는다면 서류상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일이 된다.

 

운이 좋게도 니케이 지수가 리슨의 예측대로 흘러갔다. 리슨은 회사의 손실을 메웠다.

 

그러나 리슨은 겜블을 멈추지 않았다. 리슨은 직원의 실수로 손실을 메운다는 목표 하 겜블을 했지만 한 번 맛본 수익은 그의 탐욕을 고취시켰다. 큰손 고객을 확보했고 비밀계좌로 겜블로 계약수를 늘렸기 때문에 은행의 입장에서는 막대한 수수료 수익도 얻었다.

 

회사에서는 주식 중개인으로서 라이징 스타가 되었다. 모두가 그의 차익거래의 비밀을 알고 싶어 했다. 실제로는 차익거래가 아닌 투기를 벌이는 불량 트레이더였지만 말이다.

 

문제는 당시 파생상품 분야는 신생분야여서 관리감독이 부재하였다. 싱가폴에서는 리슨 마음대로 자산을 운용할 수 있었고 수익을 얻었다는 서류상 증거만 있다면 그가 복잡한 파생상품 시장에서 무엇을 하든지 영국 본사에서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서류까지 위조하여 영국 본사로부터 돈을 끌어왔고 판은 너무 커졌다.

 

대개 겜블의 최후는 이렇다. 자신의 예측이 몇 번 들어맞으면 자신의 예측을 확신하게 된다. 실제 시장이 자신의 포지션과 반대로 가더라도 손절매를 하지 않고 시장과 맞서 싸운다.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게 된다. 잘나가던 트레이더도 결국 그렇게 시장에서 사라지곤 한다.

 

리슨은 은행의 돈으로 시장의 가격을 본인이 움직이려고까지 했지만, 시장과 맞서다가 베어링스 은행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이는 단순히 영화가 아니다. 실제로 영국의 한 은행을 파산시킨 한 트레이더의 이야기이다.

 

그는 인생에서 여러 차례 운이 따라줬지만 그 운들로 인해 마지막에는 유서 깊은 한 은행을 날려버리고 아내와 이혼하고 징역형을 받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다.

 

개인 트레이더는 이 영화에 많은 공감을 할 것이다. 자신의 예측대로 흘러가서 극단적 희열(euphoria)을 느끼는 모습에 공감할 수도 있고, 시장이 원하는대로 가지 않아 절망감을 느끼는 부분에 공감할 수도 있다. 시장 그 자체의 모습이 익숙할 수도 있다. 싱가폴 거래소에서 주식 중개인이 특정 가격에 매수와 매도를 외치는 모습을 보면 오늘날 HTS 또는 MTS에서의 정글과 같은 호가창과 같다. 어떤 세력은 갑자기 매도를 해서 가격이 순식간에 떨어지게 만든 다음 뒤따르는 매도물량이 나오도록 공포감을 형성하다가도 이러한 공포감을 이용해서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하기도 한다. 순간순간 호가창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식 중개인들이 거래소에서 벌이는 투쟁으로 잘 묘사하였다. 오락가락 하는 순간순간의 차트를 보면 판단력을 상실하게 되고 노련한 세력들에게 지고 만다.

 

트레이더는 손실을 보면서도 물타기를 하다가 운 좋게 살아나기도 하지만 시장이 반대로 가면서 엄청난 손실로 청산하기도 한다. 빚까지 투입해서 그 손실이 너무 커지는 경우도 있다. 이론상 자산이 무한하다면 손실을 보더라도 더 큰 돈을 계속 투입해서 한번이라도 이기면 손실을 메울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무한한 돈도 없을뿐더러 연속으로 여러 번 질 수도 있다. 과거에 연속으로 3일간 가격이 떨어졌다는 히스토리가 있다고 해도 그다음도 3일에 그친다면 오산이다. 그보다 더 길게 더 큰 폭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패배를 인정하고 손절매를 해야하지만 눈앞의 손실을 보면서 인간의 일반적인 감정은 그렇지 못한다.

 

트레이더가 선물시장에서 느끼는 엄청난 압박감, 즉 머리가 뜨거워지고 구역질 나는 느낌을 이 영화는 정말로 잘 표현해주고 있다. 심지어 눈덩이처럼 불어난 손실에 익숙해져 해탈하는 모습도 보인다. 돈이 무엇이라고 이렇게까지 고통을 받을까. 만약 주인공 리슨이 돈을 쫓지 않고 평범한 은행원으로 살았다면 평범하게 잘 살았을 수도 있다.

 

합법적 도박장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다. 니케이 선물처럼 지수 선물은 미래의 지수 흐름에 대해 계약을 맺는다. 이론상으로는 만기일에 계약 가격보다 높냐 낮냐에 따라 손익이 결정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증거금을 통해 매일 정산이 이루어지고 손실이 커지면 추가 증거금을 요구한다. 소위 마진콜을 견디지 못하면 만기일도 가기 전에 죽게 된다.

 

다양한 세력이 다양한 목적으로 거래를 하면서 가격이 요동을 친다. 변화무쌍한 가격을 아무 무기 없이 맞추는 일은 겜블과 다름 없다. 이런 식으로라면 몇 번 통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잃게 된다.

 

영화 속에서 고통받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선물거래를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다면 적어도 운에 의존하는 겜블을 해서는 안 된다. 한 은행의 자산으로도 시장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없었는데 개인은 시장에 맞서서는 안 된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공부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자신만의 전략을 마련하고 전략이 틀렸을 때 손실을 제한하는 손절매도 해야 한다. 탐욕은 패망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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